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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rderland Between Reality and Fiction

"Art and Discourse" May 2003 Issue

By Lee Seon-young, Art Critic

 

In the darkness of exhibition space a horse, a duck or a dog is placed against the background showcasing the edge of a city. Such animal sculptures together with man and woman emerge in the photographs on a wall. They are represented like a plaything or a cartoon character. These animals and humans set in a specific situation take on a theatrical quality. Park Yong-sik at his 1999 first one-person show presented the stage garb-like works whose images had been derived from the icons of mass culture.

 

Park Yong-sik does not make these animal shapes look real and the backgrounds they are set appear to be somewhat unreal. They feature extensive construction sites and natural scenes at stake by a blast of large-scale development. They seem uprooted and away from beautiful landscape. The persons in his work appear to be anonymous and unidentified without revealing their faces: the face of a woman with a duck is deleted and the man in a hat also conceals his face. Park's attitude remains neutral although bleak urban landscapes, anonymous men and women, and animal characters more or less evoke a melancholic mood.

 

The nature in Park's work looks developed, tamed and processed. Set against the background of flowing waters, the duck in a washbowl signifies a poor nature. The sleek surfaces of painted animal sculptures look plastic but are actually made of wood. This kind of deception is a characteristic of kitschy objects.

 

The cityscape seen in the distance is not a utopia we wish to accomplish. The urbanscape poor and barren is rendered by a depiction of cement bridge posts, apartment construction sites and artery roads jam-packed with cars. Shown in his work are men, cities and nature, but they are in no way in communication with one another. The rendition of reality in Park's work appears to be obscure. It shows the scenes of reality could not minutely portrayed.

 

The photographs featuring the scenes of Seoul are the sites of our everyday life but seem not so different from a desert. Although the animal imagery in the photos is intentionally presented, it provokes a sense of presence. The artist notes the borderland where the illusionness of reality meets the reality of illusion.

 

In his work a narrative i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matter of portraying the attributes of fictitious reality and artworks. The animals in his photos are not living creatures with flesh and blood but fake ones stuffed with hard materials. They look like the playthings set in a real landscape. The setting appears arbitrary but there are no narratives for the viewer to grasp obviously. The artist throws them before the viewer and puts emphasis on the empty space of reality, expecting to be filled up with their various translations. As this situation itself forms reality, Park's work is open, as does reality.

 

In his pieces, which remain indefinite, art blends with reality and vice versa. While the figure riding a wooden horse look unreal, the horse under bright lights makes the high building behind appear to be illusionary. The duck and dog at the venue work similarly.

 

A situation in his work is rendered by the use of several compositional elements such as anthropomorphic animals, typified man and woman and urban suburbs. Park's concern lies in a rendition of fictiveness through a mixture of such limited compositional elements rather than the subjective conscious reflecting objective reality. Since his work is of course made up of formative languages, his characters are not thoroughly controlled aesthetically. 

 

Park Yong-sik notes the process of forming a world but this formation is not made simply through his own consciousness. He focuses more on the process of constructing a fictitious world rather than his subjective conscious itself. Underlining the uncertainty of our recognition of the world, he discloses the conditions of textualness and reality.  

 

The artist intends to bring about an illusion and simultaneously strives to escape from it. His work presents the contour of a world through an arbitrary system of languages and fabricates reality also by it. That is definitely the way of deconstructing a reality. Park Yong-sik, asserting to state rather than to show a scene, breaks down the boundaries between reality and fiction.

 

A Work of contemporary art is often characterized by such incomplete narratives. The narratives are not the process of an incident but the incident itself, approach to it, and the place where it occurs. Jorge Borges states that life is not a narrative but disorderly, nebulous and at random. The life stays in a mess with no any conclusion. The artist may extract some narratives in a strict, exact manner. He discovers through the work what one intends to represent might be deleted paradoxically. To translate experience into a work of art, to classify and conceptualize it is a different process from the experience itself. The gap between such experience and representation brings about anguish but the artist gains momentum to continue his art.

 

 

<현실과 픽션의 접경지대> 미술과 담론 전시읽기 2003. 5. 4

 

어둑한 전시장 안, 도심 변두리 지역을 배경으로 오리, 말, 개 등이 놓여있다. 때로 동물상들은 남녀 등장인물과 같이 벽에 걸린 사진에도 나타난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람들과 가까운 가축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장난감이나 만화처럼 표현되어 있다. 어떤 상황 속에 놓여진 이 동물과 사람들은 연극적 특성을 지닌다. 박용식은 99년에 열린 첫 개인전에서도 대중문화의 도상에서 발췌한 무대 의상 같은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동물들을 진짜처럼 만들지 않는다. 배경이 되는 장소 역시 어쩐지 실재감이 없다. 그것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공사장 같은 우리 도시이며, 개발의 광풍에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는 자연들이다. 요컨대 그것은 뿌리 뽑힌 광경들로, 멋진 풍경들과 거리가 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익명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본래 얼굴이 없다. 오리와 같이 서있는 여성의 얼굴은 과감히 삭제되었으며, 목마와 함께 있는 모자 쓴 남자 역시 관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황량한 변두리 풍경과 익명의 남녀, 그리고 동물 캐릭터들은 뭔가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작가는 특별한 감정의 무게를 싣지 않고 중성적 상황으로 연출한다. 박용식의 작품에서 자연은 개발되고 길들여지고, 값싸게 가공된다.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세숫대야에 담긴 오리의 모습은 흔적만 남은 빈약한 자연을 보여준다. 맨들맨들하며 색이 칠해진 동물 조각상들은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로 만든 것이다. 재료와 표면이 차이가 나는 이런 식의 눈속임은 키치적 사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기루처럼 저 멀리 보이는 도시들은 결코 그 인간들이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이 아니다. 시멘트 덩어리로 된 거대한 교각, 아파트 공사장이나 차량이 줄지어 있는 간선도로는 메마른 도시풍경을 이룬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도시, 인간들이 두루 모여 있으나, 상호간에 행복한 만남이나 소통 같은 것이 부재하다. 사물은 사물이고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우연히 마주한 존재로서, 서로 겉돌고 있다. 박용식의 작품 속의 현실은 불확실하다. 그의 작품은 애초부터 현실은 합리적이거나 빈틈없이 묘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외발산동, 수색, 상암동 등 실제 풍경이 담긴 사진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터전들이지만, 먼지가 풀풀 날릴 것 같은 사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막은 때로 환상적이다.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명료한 실재감으로 관객 앞에 서있는 동물상들은 만들어지고 연출된 것이지만, 나름의 현존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현실의 환상성과 환상의 현실성이 만나는 접경지대에 주목한다. 퍼트리샤 워는 <메타픽션>에서 현대의 작가들은 더 이상 신화적 유추 또는 형이상학적 체계를 의미의 최종구조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Something & Something'이라는 전시부제를 가진 박용식의 작품은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기보다는 '이것, 그리고 저것'--작품제목이 '개와 여인', '개와 풍경' 등으로 붙어있다--에 의지한다. 박용식의 작품에서 서사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속성 및 작품을 기술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가령 사진 속의 동물은 따뜻한 피가 도는 생물체가 아니라, 내부가 딱딱한 물질로 채워있는 가짜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때로 그것들은 실제 풍경 속에 놓여진 장난감 같기도 하다.

그것은 개나 오리로 착각하게끔 연출한 것이기보다는 만들어서 끼워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설정이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이 읽어내야만 하는 정확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작가는 어떤 상황을 관객의 면전에 던져 놓을 뿐이다. 작가는 연출된 상황을 통해 현실의 빈 공간을 부각시키고, 그 빈 공간을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으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상황 연출자체가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구성하기에, 작품의 의미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열려있다.

현실은 확실한 것이고, 반대로 예술은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은 예술만큼이나 환상적일 수 있고, 예술은 현실만큼이나 현실적일 수 있다. 어쨌든 박용식의 작품에서 현실과 섞인 예술, 예술과 섞인 현실은 무엇이 더 먼저랄 것도 없이 불확정적이다. 가령 황폐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목마 탄 인물이 찍힌 사진의 경우 목마와 인물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강한 조명을 받고 관객 앞에 현존하는 목마의 경우 그 뒤에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고층 건물을 창백한 환영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시장 안에 있는 오리와 개의 역할도 이와 유사하다.

박용식의 작품에서 현실은 원근법적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완전한 질서체계에 대한 신념은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현실성 상실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질서는 교란되었으나, 어질러진 질서를 정신의 심오한 단계에서 회복시키려는 증후는 없다. 그것은 '인간이 사물의 본질의 윤곽만을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으며, 다만 세계를 관찰하게 하는 틀 주위를 찾아 맴돌 뿐'(비트겐슈타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리얼리티는 주관적으로 구성된다기 보다는, 언어적으로 구성된다.

그의 작품은 의인화된 동물, 남성 여성으로 전형화 된 인물, 변두리 지역 등 몇 가지 고정된 구성 요소의 조합을 통해 상황이 연출된다. 그는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주관적 의식보다는 한정된 구성요소를 짜맞추는 식의 허구성에 관심이 있다. 물론 그것은 조형언어로부터 구성되는 만큼 언어로부터 벗어나서 구성된다. 캐릭터들은 만화처럼 대상의 법칙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고, 미학적으로 완벽히 제어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은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 주목하지만, 이러한 세계의 구성이 작가의 의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관적 의식보다는 작업을 통해서 허구의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박용식의 작품은 텍스트 자체의 언어적 리얼리티를 인식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상호 배타적인 세계의 존재를 용인한다. 작가는 우리의 세계인식에 대한 불확실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그는 텍스트성의 조건을 드러내고 그 대안세계의 허식에 찬 구성을 통해서 그 속에 나타난 리얼리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작가는 허구의 환상을 만들면서 동시에 그 환상을 벗기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언어의 자의적 체계를 통해 세계의 윤곽을 제시하고, 이 체계에 의해 리얼리티를 만들려 한다. 그것은 확고한 현실을 해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단순히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말하기를 주장하면서 허구와 현실 사이의 틀을 파괴한다. 박용식의 작품 속의 모방은 확실하게 존재하는 대상의 모방이 아니라, 허구적인 대상들의 조립fabrication에 가깝다. 그것은 텍스트의 미학적 구성보다는 기교와 자의식 상황을 체계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불완전한 서사narrative로서의 현실은 현대적 예술작품의 특징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미래의 책>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말로 옮겨 보려고 하는 예외적인 사건의 진짜 경과를 보면, 이야기의 성격은 조금도 예측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야기는 사건의 경과가 아니라, 그 사건 자체, 그 사건으로의 접근, 이 사건이 일어나도록 되어있는 장소, 아직 미래에 속하는 사건이며, 그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이야기 또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고 낯설 뿐 아니라, 이 움직임 말고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실체를 지니지 않는 하나의 점을 향한 움직임이다. 

현실의 가상적 성질에 주목한 작가 보르헤스도 인생이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혼동스럽고 불안정하며, 무작위적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무수한 결말들로 끝맺지 않은 채로 어수선하게 남아있다. 작가들은 오로지 엄격하고 정밀한 선택을 통해 인생으로부터 이야기를 추출해 낼 수 있으며, 그 이야기는 허위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없는 것을 이야기로 한다. 작가는 작업이라는 것이 원래 재현하고자 한 것을 스스로 없애 버리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경험을 작업으로 옮기는 것, 요컨대 경험을 분류하고 개념화하는 것은 언제나 경험 그 자체와는 다른 과정이다. 경험과 재현의 이러한 간극은 고통을 낳지만, 예술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될 수 있다. / 이선영(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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