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 SIK PARK
박용식의 엔터테인먼트
조각, 일상품, 사진, 설치, 이미지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박용식. 이미지를 꺼냈다가 집어넣고, 채웠다가 비우고, 죽였다가 살리는 박용식. 그의 독특한 작업은 작가와 관객의 예술적 놀이이다. 그 놀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자적 흐름을 기반으로 한다.
1. 기본 작전
1) 이미지의 구체화
박용식의 작업은 사회를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이 아닌 미시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다행히 90년대 중반부터는 거대서사가 힘을 잃고 있었다. 사회의 몰적인 흐름보다는 개개인의 분자적 흐름이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박용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개인전에서 나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하였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봤고,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진정 우리 세대가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 이전 세대가 이념적 성격에 의해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되던 것에 비해, 그 이후 세대의 작가들은 색다른 것을 모색한다. 추상적, 이념적, 형이상학적 소재가 아닌 우리 주변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눈을 돌린다. 박용식은 그것 중 하나를 TV, 만화, 영화, 패션, 가요 등 대중매체로 생각한다. 때론 저급하게 취급되어 왔지만, 이 세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왔던 것들이다. 1971년에 태어난 조각가는 우선 그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 가상의 2차원적 이미지를 3차원의 물리적 존재로 탈바꿈시키고자 하였다. 즉 평면적 이미지를 조각화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회 개인전의 마징가 제트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술은 시대에 따라 의미와 역할이 변한다는 가정 하에, 그는 기존의 거대한 예술관을 벗어나 새롭고 특별한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에 있어 유희라는 미시적 요소가 아닐지?
2) 상황 연출
2회 개인전부터 강아지, 오리, 말 등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와 똑같이 강아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매체의 캐릭터처럼 특징만 잡는다. 그러다보니 살아있는 진짜 강아지와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박용식은 그 동물 형상을 특정 공간에 배치하고 사진을 찍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지점에 조각품을 놓고 사람과 함께 촬영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 사진을 전시장에 걸었다. 미디어에서 뽑아낸 것을 조각화하고, 그 조각을 사람과 장소에 접속시킴으로써 일종의 상황극을 유도한다. 지역뿐만 아니라 장르의 경계를 타고 넘나들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전시장에 그러한 상황을 직접 설치한 것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 사진 안에 공간은 전시장의 관객이 들어갈 수 없는 특수한 공간이다. 따라서 관객들이 바라보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다.
두 번째 방식은 야외에 실제로 있는 사물과 작가가 만든 오브제를 함께 찍는 것이다. 예를 들어 <12 On Standby>의 신발주머니 보관대와 강아지, <Only Their Vacation>의 수돗가와 오리와 같이 일상적 사물에 예술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게 한다. 그는 이것을 ‘something & something’이라 불렀다. 역시 사진만 전시된다.
그렇다면 왜 인공물과 예술품을 섞는가? 박용식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는 특이한 상황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것은 만화와 실사가 섞이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사람들이 인공물과 예술품을 계속 응시하면서 이 둘을 동일시하게 되고, 결국 동일한 공간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실제와 가상이 혼재한 미디어 시대를 반영한다. 또한 관객들은 조각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으면 주변 환경은 잊고 대상물만 바라본다. 그 가려졌던 조연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그들의 관계를 평등하게 하기 위해 박용식은 그들을 모두 사진에 담는다.
3) 사물의 조각화
박용식은 <12 On Standby>와 <Only Their Vacation>에서 신발주머니 보관대와 강아지, 수돗가와 오리를 전시장으로 옮겨온다. 예술품은 그대로 가져오지만, 기존 사물은 원래 사이즈로 제작한다. 사물의 조각화라고 칭할 수 있다. 즉 강아지, 오리와 같은 가상의 이미지로 출발하여,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장면을 연출하고, 이제는 직접적으로 현실로 끄집어내었다. 작가는 ‘YS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 되어 상상의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2. 새로운 작전
1) 드로잉
지난 겨울 유럽에서 새로이 시도했던 작업이다. 먼저 광고에 나온 이미지를 선택하고, 이 이미지의 윤곽을 종이에 그린다. 이어서 잉크와 물감으로 형상을 칠하는데, 특히 경계 부분을 번지게 하여 형태를 모호하게 한다. 전시에선 원본 사진은 빼고 드로잉만 보여준다. 서로 다른 잡지에서 따온 각각의 이미지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어있거나, 뛰거나, 춤추는 등) 이 드로잉을 연속해서 걸어놓기에, 작품을 따라가면 하나의 상황적인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다. 박용식은 나중에 원본 사진을 어디서 발췌했는지를 알린다고 한다. 물론 이 드로잉을 조각화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것을 지시하는 사진과 그것을 단순화시켜 애매하게 하는 드로잉. 직설적인 것과 함축적인 것의 횡단. 이는 그가 자주 사용하는 감춤과 드러냄의 유희이다.
2) 나뭇가지 + 꽃
지난 5회 개인전에서 가장 이목을 끈 작업이다. 은행나무 가지를 흰색으로 칠하고, 핀으로 가지를 이어서 선형 구조의 입체물을 만들었다. 그 모양을 관찰하면 그가 이전에 제작했던 강아지와 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스펀지에 에폭시를 코팅한 분홍색 꽃을 나뭇가지에 붙여 작품을 완성시킨다. 동물, 나무, 꽃은 자연을 상징하지만, 전반적으로 산업사회의 피상성을 드러내듯 인공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자연과 인공의 횡단. 그의 또 다른 특징인 본질과 표피의 유희이다.
3) 여행하면서 상황극 만들기
가방 안에는 강아지 형상과 술병이 들어 있다. 그는 그 가방을 들고 여러 지역을 다니다가, 어떤 한 장소에서 가방을 열고 강아지와 술병을 꺼내놓고 사진을 찍는다. 마치 강아지가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다시 박용식은 가방을 챙겨서 이동한다. 사진에는 각 장소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담긴다. 강아지와 술병은 배우가 되고, 더불어 작가는 감독이 된다. 이 사진들을 전시장에 차례대로 나열되며, 결과적으로 인관관계가 다소 느슨한 내러티브가 발생한다. 특정 장소와 작가의 우연한 만남. 전시장에서의 작품과 관객의 교감.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가 자신의 즐거움.
-류한승(미술평론가)